외세에 의한 강압적 변화의 모색
실학을 유학적 질서 안에서의 소극적인 변화의 모색이라고 한다면
개화기의 변화는 유학적 질서를 넘어서는 개혁과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요인 : (1) 내적 요인 (2) 외세의 강압적인 개입
내적 변화의 요인들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외적 요인들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변화가 강요된 것에
근대화의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내적 개혁의 한계는 그만큼 조선 500년을 지탱해 온 유교적 질서가
매우 강력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 주도의 교육개혁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 쇄국정책은 끝이 나고 외세와의 접촉과 교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
1883년에 외국과의 교섭을 담당할 통역 양성을 위한 동문학(일명 통변학교)을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후에 육영공원을 설립(1886)하여 대체
1894년 갑오개혁 : 교육입국조서 발표(고종), 과거제 폐지되고 신분제도가 혁파됨으로써
보통교육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교사 양성을 위한 한성사범학교관제가 마련
(*봉건교육제도에서 근대적인 신교육제도로의 전환점을 이룸)
한계 : 교육개혁의 기본 방향을 동도서기로 설정
근본적인 가치관과 정신의 개혁 없이 표면적인 것들만을 수용하려는 자세 때문에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개혁을 못함
민간 주도의 교육개혁
민간 학교로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신식학교(최초의 신식학교) : 1883년에 설립된 원산학사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원산에서 일본 상인들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상인, 주민들과 개화관료들이 힘을 합하여 설립
1885년 배재학당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광혜원
1886년에 이화학당
이들 신식학교들은 모두 개신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
(이후에도 많은 기독교 사학들이 설립)
*개화기 의의 : 유교교육으로부터 신교육으로의 전환,
신분계층에 제한되었던 교육으로부터의 탈피(여자도 공부 가능),
한글의 보급 등 중요한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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