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교육문화의 두 근원: 그리스의 철학과 히브리의 종교적 전통
호머 시대의 교육
호머가 쓴 서사시 『일라이드』와 『오디세이』안에 잘 나타나 있음
이 시대는 영웅(지혜)과 무사(몸, 행함)의 시대 :
좋은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내용의 교육 (체육과 음악이 주요 내용)
각 폴리스는 서로 경쟁관계, 이웃한 페르시아 등의 국가와도 잦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환경이었기에
영웅과 무사에 대한 위상이 높았다.
소피스트 시대의 교육
시간이 흐르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적 확고한
정치적·군사적 안정과 그에 따른 평화 안에서 영웅의 필요성↓
소피스트 :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
그러나 그들의 활동에 대한 후세의 평가에 따라서 궤변론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그들은 아테네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시민이 아니라 그리스의 중심으로서의 아테네의 번영을 함께 누르고자 찾아온 이방인들이었다.
교사로서 베푼 가르침은 아테네의 전통, 역사,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많았다.
(훗날 아테네를 혼란스럽게 한 원인으로 간주)
②가르침의 주 내용은 말과 관련
(중심 과목 : 문법, 수사학, 변증법 등의 과목들을 새롭게 개발→정신훈련에 사용)
‘말’이 인간과 교육의 이해에서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어 로고스(logos)는 말이자 이성을 의미하는 데서 알 수 있드시
말의 숙련은 곧 이성의 발달을 의미했고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곧 정신적으로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교육의 역사에서 최초로 교육과정(Curriculum)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들로 인정
이전부터 존재했던 체육, 음악, 수학 등의 과목들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교육에 수용하고 활용
나중에 스콜라 학파에 계승되면서 7자유교과(septem artes liberales)로 발전
소피스트들은 흔히 교육의 역사상 최초의 직업적인 교사로 알려져 있다.
철인들의 시대
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의 교육이 가르침을 베푸는 자, 지식의 전수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조력자적인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스스로 “나는 모른다”라고 말한다.
또한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소프시트들은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자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방법을 산파술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라톤
이원론적인 이데아론
진리를 아는 것이 절대적인 교육의 목표 (철인-책 『국가(Politeia)』)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 밖에 존재하는 이데아를 인정하고
그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며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점을 인정
BUT 플라톤과 같이 현실과 이데아를 완벽하게 분리된 두 세계로 보지 않았다.
‘질료-형상론’: 개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상은 이데아이며 사물의 본질에 해당한다.
본질로서의 형상은 그 자신의 고유한 형태를 실현하려고 하는 힘이다.
질료는 재료에 해당한다.
현실중심적 교육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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